교육개혁 발목 잡는 교원 근평제도-한겨레 왜냐면
교육개혁 발목 잡는 교원 근평제도
지재호/고교 교사·경기 평택시 동삭동
지금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인사철을 앞두고 근무평정(이하 근평) 점수 때문에 무척이나 민감하다. 특히 교장·교감 승진 후보자라도 되면 승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근평을 얻기 위하여 치열한 신경전과 로비를 벌인다. 근평을 위해서라면 평소 함께 어울려 운동을 하고, 술잔을 나누며 고민하던 동료도 선후배도 없다. 이쯤 되면 교사의 목적이 오로지 교감·교장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최근 교원평가를 둘러싼 뜨거운 논란은 잠시 접어두고, 현행 근평제도의 허구와 독소 조항들을 짚어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원정책 검토단도 우리나라 교원의 근무 조건 및 임금 등은 안정적이지만, 승진 제도에만 활용되는 현행 근평 제도는 교원들의 전문성 신장을 촉진할 수 있는 제도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또한 지난해 11월 한국교육개발원이 전국 초·중등 교원 295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94.3%가 근평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근평 제도의 문제점으로는 상급자 위주의 평가(43.6%), 모호한 평정 기준(22.9%), 상대평가 방법(10.2%) 차례로 나타났다.
1등수를 얻기 위해서는 교장·교감에게 충성 경쟁은 필수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교장의 개인 비서 구실을 자임하거나 교장의 사주를 받아 교무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도 모두 밀고(?)해야 하는 노릇을 마다지 않는 교사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행 교육공무원법 및 교육공무원 승진규정에 따른 교원 근평 제도는 교장을 제외한 교사와 교감이 평가 대상으로, 교사는 교감과 교장이, 교감은 교장과 감독청이 평가하는 방식이다. 근평제는 교사의 지도능력 및 전문성 등을 평가하는 평가지표가 모호하며, 평가 결과는 승진·전보·포상 등 인사 관리에 한해서만 활용돼 왔다. 근평 사항 중 근무 실적 및 근무 수행 능력의 평정은 네가지 항목, 즉, 학습지도, 생활지도, 교육연구 및 담당업무가 주된 요소다. 근평 평가 자료는 학년말에 교사가 형식적으로 제출하는 평가서 한 장에 불과하고, 평가도 공무원 승진규정 제26조에 의거하여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근평의 공정성이나 투명성 확보는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같은 근평의 ‘수’라도 1등수와 2등수에 따라 승진에 반영되는 점수 차이가 크기 때문에 1등수를 얻기 위해서는 교장·교감에게 충성 경쟁은 필수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교장의 개인 비서 구실을 자임하거나 교장의 사주를 받아 교무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도 모두 밀고(?)해야 하는 노릇을 마다지 않는 교사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교육 철학도 없고, 자질이 의심스러운 무능한 관리자들이 근평이라는 무기를 들고 학교 안에서 치졸하고 위험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학교 교육업무(담임, 수업, 교무업무 등)에 최선을 다하는 자가 1등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문제지만, 그나마도 승진 대상자 이외에는 의미가 별로 없기 때문에 근평의 효용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입법예고된 새로운 교원평가제 역시 교육부가 말하는 교사들의 능력 개발과 전문성 신장과는 거리가 먼 기존 근평제의 연장일 뿐이다. 학생, 학부모의 참여를 끼워 넣어 교육 개혁 실패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달래면서 공교육 실패의 원인을 오로지 교사의 무능의 문제로 돌리고, 속으로는 교장·교감에 의한 교사 평가를 통해 교사와 학교 교육을 통제하려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평가 시스템이다.
‘교장선출제’를 비롯한 승진 제도의 획기적 개선만이 승진의 굴레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자유롭게 교감을 나누고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학생, 학부모, 대다수 교사들이 원하는 교육 개혁은 진정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