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사랑 중독증

한길 2005. 11. 18. 09:18
꽉 죄기보다 느슨한 사랑이 더 건강
■형경과 미라에게■

1회 - 용기 없는 사랑

2회 - 의심과 배신

3회 - 사랑중독증

4회 - 실연과 남는 사람들


혼자 된다는 것이 너무나 무서워요

[질문]: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 자신보다 그 사람을 더 사랑하는걸요. (마음)

참 좋은 사람인데 제가 망쳐버린 것 같아 죽고만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헤어질 자신이 없습니다. 정말 없습니다. 남자를 처음 사귀어본 건 아니지만 힘들게 헤어질 때마다 항상 제가 못나서 좋은 사람을 놓친다고 생각했습니다. 혼자된다는 것이 너무나 무섭습니다. 그렇다고 저 땜에 괴로워하고 울상 짓는 그를 보는 것도 매일매일 벼랑에서 떨어지는 기분입니다. (사랑)

남친이 사회생활이란 걸 시작하면서 저 아닌 사람들과 재미있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너무 속상하고 화도 나요. 남친이 지겹대요. 왜 그렇게 자길 못 믿고 의심하느냐고... (고민)

제가 취업준비에 몰두하자 남자친구는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에 집 앞으로 찾아와 술주정을 부리는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더군요. 자기는 내가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은데 나는 자기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거 같아서 질투가 난다나요? (hesel)

비위라도 거슬리는 말을 할 때면 이젠 바로 짜증을 내며 자기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바로 윽박지릅니다. 이러다 헤어지는 것이겠죠. 그래서 전 자제를 하며 다시 그녀 밑으로 순종하며 빌며 들어갑니다.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내비추면 바로 끝내버리겠다는 자세이기 때문이죠. (블루)

같이 있지 않을 때도 나름의 즐거움 찾고…
긍정적 자화상 변화 노력을

사랑에 중독된 사람들은 말합니다. 나 자신보다 그를 더 사랑한다고, 함께 있음으로 해서 매일매일 벼랑에서 떨어지는 고통을 겪을지라도 결코 헤어질 수 없다고 말입니다. 정말 짜릿한 사랑의 속삭임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사랑을 받는 상대는 행복해하는 것이 아니고, 고통스러워하거나 혹은 점점 더 나빠질 뿐입니다. 그들은 연인의 집착 때문에 숨막혀하고 지겨워합니다. 또 사랑중독증에 빠진 사람들이 보여주는 저자세와 자기비하가 상대의 내면에 숨어 있던 뻔뻔함과 폭력성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결국은 사랑의 이름을 빌어 자신도 상대도 불행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자신과 자신의 사랑에 대한 학대일 뿐입니다. 사랑중독증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먼저 그 가슴아픈 사실을 인정하고 자각해야 합니다. 자신의 사랑이 결국은 사랑이 아니라 ‘독’이었음을 말입니다.

사랑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받을 수 없었던 어린시절이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그때부터 타인의 사랑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타인의 사랑으로 자기존중감을 지탱하고 사는 사람들의 사랑욕구를 채워줄 연인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무리 사랑해주어도 만족할 줄 모르며, 혹시나 그 사랑이 끝나버릴까 늘 전전긍긍하는 상태가 됩니다. 그런 그를 지켜보는 연인은 자신의 노력이 허사라고 생각하면서 서서히 지쳐갈 밖에요.

그러고 보면 사랑은 본질적으로 타인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에게 허락하는 것인가 봅니다.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타인이 주는 사랑을 충분히 즐길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사랑을 주고받는 데 서툴렀기 때문일까요?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허기증이나 결핍증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절대적이고 전폭적인 사랑’, ‘나를 불행으로부터 건져준 사랑’, ‘내 인생의 전부가 된 사랑’, ‘내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사랑’ 심지어 ‘치명적이고 위험한 사랑’ 등을 찬미하느라 정신없습니다. 온 사회가 사랑중독증후군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부디 그 집단적인 아우성에 너무 많이 휩쓸리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젠 사랑에 대한 생각을 바꿔보세요. 같이 있으면 같이 있어서 행복하고 따로 있을 땐 또 나름의 즐거움을 느끼는 관계야말로 아름답다는 생각, 자신에게 완전히 종속된 상대보다 언제라도 자유롭게 떠나갈 수 있는 상대가 더 매력적이라는 생각, 또는 그가 떠나면 내 인생 전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인생의 여러 의미있는 요소들로 인해 이별의 아픔을 잘 극복할 수 있는 딱 그 만큼의 사랑이야말로 건강한 사랑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렇게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는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완전한 사랑이며, 앞으로는 그런 사랑을 경험하게 해줄 상대를 만나고 싶다고 자기 자신에게 수없이 되뇌이는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당장 자신의 자화상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구체적인 노력을 시작하십시오. 관련 서적을 읽고, 친구들과 토론하며,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보는 식으로 말입니다.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마세요. 사랑중독증에서 벗어나게 되면 연애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서 크고작은 기적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박미라/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