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용기없는 사랑

한길 2005. 11. 18. 09:14

사랑 패턴이 늘 비슷할 땐 각성 노력을

■형경과 미라에게■

새 사람을 사귈 때마다 의심하게 되요

1회 - 용기 없는 사랑

2회 - 의심과 배신

3회 - 사랑중독증

4회 - 실연과 남는 사람들

[질문]: 한번 시작하면 사랑에 너무 푹 빠지고, 힘들고 괴로워서 헤어지자는 얘기를 합니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말입니다.(쏭쏭)

스무 살께 아버지의 여자문제로 인해 크게 상처를 받았고, 괴로워하는 엄마를 지켜보면서 더 많이 힘들었던 저에게 ‘믿음’은 허상에 불과했죠. (싱글)

모든 남자들이 다 제 첫사랑처럼 변해버릴 거 같아서 믿지를 못하겠어요. 새 사람을 사귀게 될 때마다 핸드폰, 지갑, 수첩, 가방 등 안 뒤진 게 없습니다. (구름)

4년간의 시간, 그 모든 것이 거짓처럼 느껴지고, 그 거짓에 놀아난 것만 같은 제 자신과 자존심이 무너져내리고…. (…)

머릿속이 정말 혼란스럽고 복잡하네요. 인생은 부딛칠수록 참 힘겨운것 같습니다. (봄이올까)

애인이 심하게 다투고 나면 헤어지자고 하고요. 저는 매달리죠. 어느 정도의 반복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화이트)


용기없는 사랑은 겉돌고 과거 그림자서 못벗어나
깊은 성찰과 대화 시도해야

[답변]: 용기 없는 사랑은 나름 치열하기는 하지만 언제나 겉돌게 됩니다. 관계의 본질로 들어가 자신과 상대의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할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용기없는 사랑의 특징을 세 가지로 나누어보았습니다.

첫째, 그들은 끊임없이 싸우지만 정작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적이 별로 없습니다.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지 듣는다는 건 솔직히 겁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전가하려고 억지 섞인 짜증을 부리면서 끊임없이 헤어지자고 투정을 부립니다. ‘그래, 헤어지자고’, ‘지금 헤어지잔 소리 아냐?’, ‘헤어지면 괴로움도 끝일거야’는 식의 자포자기형에서부터 ‘내가 헤어지자고 하면 그가 무조건 빌고 들어오겠지…’라고 생각하는 전략형까지 다양합니다.

‘이별 중독’에 빠지면 다음에 오는 사랑과도 습관적으로 이별을 시도합니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채 이별하고, 자신의 뜨거운 사랑을 감당하기 어려워 헤어집니다.

둘째, 용기없는 사랑은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과거에 우리 아버지도 엄마를 배신했지’ 혹은 ‘과거의 사랑이 나를 보기좋게 이용했어’라고 생각하는 유형입니다. 첫사랑에 배신당한 한 여성은 그 뒤에 만나는 상대를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떠나보냅니다. 과거의 분노를 현재의 상대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사실 사랑을 불행으로 결말짓기로 작정한 듯이 보일 뿐입니다. 불행을 감당할 용기가 없어서 일찌감치 불행을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그런 뒤에 사람들은 한탄합니다. ‘거봐! 다 똑같다니까. 내 사랑은 번번이 불행해진다고.’

그런 관계를 몇 번 반복하고 나면 남은 건 결국 분노와 자기 부정과 회한 뿐입니다. 몸은 20대지만 마음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인이 되어 있습니다. ‘그에게 속았어’, ‘결국 그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단 말인가?’, ‘인생을 헛산 거야’, ‘죽어버리고 싶어’.

세째,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랑이 늘 비슷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에 뭔가 해결하고 극복할 것이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내면이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반복해서 비슷한 유형의 사람을 좋아하게 만들고, 또 비슷한 과정을 겪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툭하면 헤어지자고 투정부리는 남성과 제발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는 여성은 각자 민감한 문제를 안고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둘 다 심각한 ‘분리공포증’을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지, 자신의 분리불안은 무엇에서 비롯됐으며,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앞으로도 그런 상대를 만난다면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지 알아낼 때까지 자신을 성찰하고, 상대와 대화를 시도하고, 주위 사람들과 상담하고, 공부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아픔의 대가로 삶의 중요한(!) 지혜 하나를 얻어내는 것이지요. 사랑에 통찰력이 생기고 나면 그동안 쌓여 있던 막연한 두려움도 분노도 사그라듭니다. 일석이조인 셈입니다.

부디 사랑의 고통 앞에서 치열해지고 용감해지세요. 지금 겪는 사랑의 아픔은 미래의 성숙한 사랑을 위한 몸풀기 운동일 뿐입니다.

박미라/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