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의심과 배신

한길 2005. 11. 18. 09:17
‘나쁜’ 상대 부르는 본인 기질 바꿔야
▲ ‘나쁜’ 상대 부르는 본인 기질 바꿔야 “나쁜 여자 나쁜 남자”-형경과 미라에게
■형경과 미라에게■

1회 - 용기 없는 사랑

2회 - 의심과 배신

3회 - 사랑중독증

4회 - 실연과 남는 사람들


[질문]: 제가 번 돈을 다 써가면서도 그 사람을 만나면 행복했습니다. 번 돈도 모자라 남의 돈을 빌려가면서까지 그 사람 생활에 보탬이 되고자 했습니다. 친구들은 저보고 미쳤답니다. 사랑 때문에 가족 친구 버리고 목숨까지 바칠 거냐고. (걱정이)

그는 화나면 말을 심하게 합니다. “싸이코다, 나쁜년이다.” 몇 번 길에서 저를 밀친 적도 있구요. 며칠 전에는 그 사람 집에서 싸운 적이 있는데 그가 방에 있는 물건들을 발로 차고 던지고 그랬습니다. 저는 자존심을 버렸습니다. (필통)


그는 헤어지자는 말을 자주 합니다. 작은 일만 생겨도 “내일부터 전화번호 바꿀 거고, 직장도 그만둘 거니까 서로 볼 일 없을 거다. 잘 살아라.” 그러면 저는 이유도 모른 채 몇 번이고 전화해서 무조건 용서를 빕니다. (봄날)

우연히 여자 친구의 이메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끝났다던 남자와 3년째 계속 사귀는 중이었고 저와 매일 만나는 시기에도 그 남자와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고 있었습니다. (가을)

그 여자는 말없이 떠났다가 돌아와 “지나고 보니 사랑이더라”고 말하며 저를 흔들었습니다. 그러고는 또 “소홀한 듯 무관심한 듯 1년만 곁에 있어 달라”고 말합니다. 저를 붙잡은 후에 진짜 가슴 설레는 사람을 만나면 그때 후회하게 될까봐 두렵다는 것입니다. (새벽)

사랑의 환상에서 깨어나 상대방 실체 제대로 봐야…
사랑할 가치있는 사람 사랑하길

우리 모두 동의하는 한 가지 사실은 사랑의 힘이 무한하고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한없이 인내하고 포용하고 용서하면서 상대방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이라는 인식도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그 어마어마한 개념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보통 사람은 감히 실천할 수 없는 사랑의 신화가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도 영화나 드라마는 사랑의 신화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은 신화같은 사랑을 기대하거나 실천하면서 고통받습니다.

사랑의 이력에서 유난히 나쁜 여자/나쁜 남자를 많이 만나는 사람들은 우선 사랑의 환상에 지배당하고 있을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가 아무리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대해도 사랑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인내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들의 내면에 있는 환상은 아주 폭넓어서, 사랑하는 대상도 그 실체가 아니라 상대에게 비친 내면의 허상을 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우선 사랑의 환상을 인식한 다음 상대방의 실체를 제대로 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한없이 이해하고 포용할 대상이 아니라 해결해야 하는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소 거칠게 단순화시켜 말하면, 양다리 걸치는 사람은 내면에 극단적인 불안감을 가지고 있어 마치 보험들 듯 또 한 사람을 준비해 놓는 것입니다. 거짓말쟁이는 상대방에게 사랑받지 못할까봐 ‘사실’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할 것 같은 대답을 들려주는 사람입니다. 툭하면 헤어지자고 말하는 사람은 생의 긴장과 갈등을 조절하고 해결할 줄 몰라 자기 생을 구겨버리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여자 친구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람은 주도적으로 생을 운용해나갈 자신이 없는 나약한 사람입니다.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무의식에 있는 분노를 자각하고 조절하지 못해 약한 상대에게 그것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또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가슴 아프구나. 내면의 상처 때문에 그랬던 거지 본질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 내 사랑의 힘으로 그를 바꾸어줄 거야…….” 만약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바로 그런 태도가 당신의 문제점임을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만나면 그가 개선될 거라는 생각은 극단적 나르시시즘이거나, 사랑의 이름으로 상대를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방어의식입니다.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관계 속에서 내밀한 만족과 안도감을 느끼는 자기파괴적 성향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나쁜 여자/나쁜 남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비슷한 유형의 상대방을 만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콤플렉스가 왜곡된 신호를 보내어, 저쪽의 콤플렉스를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쟁이는 의처(부)증 환자를 불러들이고 가학적인 사람은 피학적인 사람을, 이기적인 사람은 희생양이 될 만한 사람을 기가 막히게 찾아냅니다. 그런 기질은 관계가 지속되면서 거듭 강화됩니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나쁜 여자/나쁜 남자인 상대방을 바꾸려 할 게 아니라 그런 이들을 불러들이는 당신의 기질을 찾아내어 그것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선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우리 자신뿐이며, 그것도 1퍼센트 바꾸기가 피눈물나게 어렵습니다. 그런 다음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김형경/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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