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유방이 항우를 이긴 까닭은

한길 2006. 8. 22. 10:37
 

유방이 항우를 이긴 까닭은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소중한 현대의 정보화 시대의 역설


가장 진화했다고 하는 포유류 동물들은 귀가 두 개고 입이 하나이다. 약육강식의 자연계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말하거나 소리치는 것 보다는 잘 들어야 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는 기관 모두는 각각 2개다. 그 기관들을 통해 얻은 정보를 가지고 판단해서 주변 동료들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는 입은 하나이다. 이것은 자연에서 사는 동물들에게 자연이 준 지혜이다.

사회 속의 인간도 많이 듣고 보고 냄새 맡고 느낀 다음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고,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말하기 보다는 듣기를 잘하라. 한번 말하기 전에 두 번 들어라. 말 같지 않은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라’ 등의 격언이 이러한 사실을 방증한다.

기원전 3세기말 명문가 출신인 항우와 중농 출신에 불과했던 유방은 중국 천하를 놓고 자웅을 겨뤘다. 이 둘의 싸움에서 객관적 힘의 열세와 개인의 능력 부족에도 불구하고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고 한(漢)나라를 열었다. 명문가 출신의 똑똑한 항우는 자신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주위 사람의 말을 무시했다. 그러나 출신이 별 볼일 없었고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알았던 유방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항우는 동료나 부하들의 의견보다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서 모든 일을 결정했다. 그는 동료나 부하들의 의견을 자신의 생각보다 못한 것으로 여겼다. 이 때문에 그는 주변의 경고와 충고를 무시하고 독단으로 일을 진행했다. 심지어 자신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부하들에게는 오히려 가혹한 형벌을 내리기도 하였다. 이런 일들이 계속되자 조직과 국가 발전을 위해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려는 부하 장수들과 신하는 말문을 닫아 버렸다.

그러나 똑똑하되 조금은 게으르며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유방은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지 않았다. 유방은 보다 많은 권한을 부하 장수와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는 동료와 부하들의 의견을 경청하였고 그들을 잘 활용하였다. 하지만 유방은 수수방관만 하지는 않았다. 필요할 때는 부하들의 잘못된 정책방향이나 보고 등에 대하여 명확하게 방향을 잡아 주기도 하였다. 이런 일들이 계속되자 동료나 부하들은 자연히 유방을 존경하게 되었고, 그를 믿고 따르게 되었다.

현대는 정보화 시대이다. 필요하다면 수 없이 많은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인터넷과 다양한 대중매체를 통해서 능력과 실천력이 뛰어난 사람, 숨어 있는 인재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한 사람의 열 걸음 보다는 열사람의 한 걸음이 필요한 시기가 현대 정보화 사회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가려내는 능력이 중요한 것처럼, 관리자는 다양한 능력을 가진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활용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유방이 항우를 이긴 이유는 다양하다. 결정적인 것은 유방은 항우에 비해서 낮은 데로 임하였고, 낮은 데로 임한 그에게 많은 인재들은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유방은 그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잘 활용하였다.   

유방은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때는 과감하게 자신의 의견을 철회하기도 하였다. 이런 통치철학은 신하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되었다. 그 상황에서의 한나라는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낮추어서 자리를 양보하기도 하였다. 자신의 자리가 아니면 있지를 말 것이며,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마라는 지혜를 유방은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였던 것이다.

이수석/인천 동산고 철학 교사,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논리를 찾아라> 저자